물 주는 시간

오늘의 선곡

2022. 4. 16. 00:00
Rhapsody on the Theme of Paganini, Op. 43- Variation XVIII. Andante cantabile





글로 담을 수 없는 하루를
음악으로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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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상실의 시대

2022. 4. 6. 20:14


동생이 떠난 후, 사람들에게 그의 부재를 종종 말해야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는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그 중 가장 뇌리에 박혀있는 기억은 토론토로 막 이주했던 2016년 초여름으로 향해가던 5월이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집을 구하기 전까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임시숙소에서 머물렀다. 숙소 주인은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의 한국인 중년 부부였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쭈뼛쭈뼛 서로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으레 하는 인사치레와 같은 질문이 오갔다.

어디에서 왔냐, 어떻게 토론토로 오게 됐냐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형제는 어떻게 되냐에 대한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언니와 나, 둘이라고 말했다. 숙소 주인은 내 형제가 둘이든 셋이든 알 길 없고, 사실이 무엇이든 상관없겠지만 나는 그 대답이 지금 이 순간까지 아프게 남아있다.




당시에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던 우토가 방에 들어와서 조심히 물었다. "왜 둘이라고 대답했어?"

"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서." 와 같이 얼버무리듯 말했던 거 같은데, 정확히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자세히 기억은 안난다.

혹시나 언니나 동생은 뭐하냐고 물으면 동생은 하늘나라에 갔다고 말하는 게 힘들었고, 또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나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까봐 걱정이 되서였다. 그리고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기도 했고.










담담하게 동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얼마 안됐다. 처음 소식을 듣고 울부짖던 그 때를 떠올리면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지만, 벌써 7년이 흘렀다.

시간은 만물을 여물게 한다는 말처럼 내 마음도 여물게 해줬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살펴준 덕분과 심리상담을 통해 묵혀두었던 감정을 쏟아내고 난 후 많이 괜찮아졌다. 고통을 직면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과정을 충분히 겪어내고 나니 단단해진 것 같다.





그동안 만났던 엑스들과의 이별도 늘 그래왔다. 헤어지고 난 후, 상실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우울하고 슬픈 감정에 빠진 나를 그대로 두고, 바닥을 치고 올라오길 기다렸다. 일부러 슬픈 음악을 찾아듣고, 나중에 보면 이불킥을 할 흑역사가 가득 담긴 글을 쓰고, 눈물이 나면 그냥 울면서 저절로 치유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동생과의 이별도 마찬가지다. 그저 상실의 크기가 아주 컸기에 받아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손예진이 나온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 서른 아홉의 마지막회를 오늘 보았다. 드라마 단골 소재인 시한부와 입양에 대해 다룬 드라마인데, 흔한 소재임에도 다양하게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좋았다. 덕분에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내 죽음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괜히 센치해져 동생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예전부터 생각만 해왔던 내 죽음과 관련해 공개적인 글을 하나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생이 떠나고 난 후, 죽음은 내게 삶처럼 아주 가까운 단어가 되어서 종종 이런 글을 쓰게 된다. 나는 더 건강해지기 위해 쓰는 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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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추기록

추추기록 9

2022. 3. 23. 18:43


투 : 임모 고양이 다리 하나가 어디 가떠요?
나 : 나쁜 사람이 고양이 다리를 잘랐나봐
투 : 왜 나쁜 사람이 음- 음- 왜 고양이 다리를 짤라요?
나 : 나쁜 사람이 화가 났는데 괜히 고양이한테 화내면서 고양이 괴롭했나봐
투 : 그럼 고양이 어떠케 해요?
나 : 고양이 어떻게 해줄까? 이현이는 고양이한테 뭐라고 말해줄거야?
투 : 고양아 미안해... 사랑해





나 : 이현이는 고양이한테 어떻게 해줄거야?
투 : 핫뜨 그려줄거야
나 : 하트 그려줄거야? 어디에다가?
투 : 음- 음- 색종이에다
원 : 어- 전 동물 의타턴땡님한테 전화 해줄거예요
나 : 동물 의사선생님한테 전화해줄거야? 그럼 승현이가 돈 내줄거야 고양이를 위해서?
투 : 나뚜 돈 내듀꺼야
원 : 녜!!!
나 : 그럼 승현이 돈 얼마나 있는데?
원 : (주머니 뒤적뒤적) 어- 어- (짜잔! 빈 손)
나 : ㅋㅋㅋㅋ 승현이가 전화해주면 이모가 돈 줄게




(집에 도착해서 할머니 보자마자)
원투 : 함머니! 고양이 다리 하나가 짤렸대요!!!!!
할 : 으엑? 고양이 다리가 하나 짤렸어????
원 : 네!!!! 나쁜 사람이 고양이 다리를 짤랐때요!!!!!
할 : 아이구 어떡하냐 고양이 ㅠㅠㅠㅠㅠ
투 : 고양이 속땅하게따.... 이현이 속땅해요







(아침 등원길에 신호등 기다리면서)
나 : 우리 잠깐만 기다리자! 파란불 되면 건너야하니까
투 : 파란불이 아니구 초록불이자나요!!!!!
나 : 우와 이현이 말이 맞네! 그런데 이현이 말대로 초록색인데 사람들은 파란불이라고 말하기도 해


(신호등 건너고 같이 걸어가는 길에)
원 : 이모 이거 무슨 소리예요?
나 : 아저씨가 자전거 주차하려고 브레이크 잡아서 끼익- 하고 나는 소리!
투 : 임모 이거 무슨 소리야?
나 : 아저씨가 주차..
투 : 새 소리자나요!!!!!!!
나 : 아니 이현아 이모가 오빠랑 얘기하고 있어서 새소리 못 들었었어 자전거 주ㅊ
투 : (짜증+소리치며) 아니예요 새소리라구욬!!!!!!
나 : 야 추이현 너 새소리인 거 알고있으면서 왜 이모한테 물어봐?ㅋㅋㅋㅋㅋㅋㅋ
투 : (퉁퉁 부은 얼굴+대답 안함)
나 : ㅋㅋㅋㅋㅋㅋㅋ 이현이 알면서 왜 물어보는거야? 대답해줘봐 왜 물어보는건데~~~~~~~~
투 : (대답 안함)




(추추투랑 둘이 유튜브로 물고기 만화 보는 중)
투 : 임모 이거 뭐예요?
나 : 미역!
투 : 임모 이거는 뭐예요?
나 : 응 미역이야
투 : (짜증) 아니 아니라구요
나 : 아~ 물고기 지느러미야!
투 : (소리치며) 아니예요 긴 거! 긴 거!!!!
나 : 이현이가 뭐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이현이가 어떤건지 손으로 가르켜봐
투 : 아니예요 아니라구요~~~~~~ (울먹울먹)
나 : 아이 알았어 그럼 어떤건지 다시 되감기해서 봐보자!!!! (되감기 중)
투 : (유심히 보다가) 이거요~~~~~
나 : 이거 지느러미잖아~~~~
투 : 아니라구욕 이거 긴 거요 까만거엌!!!!!!!!!!!
나 : 아가미? 아가미 말하는거야?
투 : (갑자기 온순해져서) 녜~~~ 아가미? 아가미가 뭐예요?




투 : 왜 물고기는 다리가 업떠요?
나 : 물고기는 바다에 사니까 다리가 필요없대
투 : 왜요?
나 :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쳐야하는데 물에서는 다리보다 꼬리로 헤엄을 더 잘 칠 수 있대
투 : 왜요?
나 : 물고기는 땅에서 걸어다닐 필요가 없어서 다리 대신에 물에서 헤엄칠 수 있는 꼬리가 생겨난거래
투 : 왜요?
나 : 물고기가 꼬리 말고 다리가 생기면 물에서 지금처럼 헤엄치는 게 쉽지 않을거야
투 : 왜요?
나 : ㅋㅋㅋㅋㅋㅋ 이모도 잘 몰라 이제 그만 물어봐..




(내 책상에 올려진 고구마 껍질 보고선)
원 : 이모 근데 이모가 고구마 다 먹어떠요?
나 : 응 이모가 다 먹었어
원 : 아이참 이모 혼자 다 먹으면 어떠케 해요! 우리도 먹어야지요 우리도 고구마 조아해요
나 : 미안해... 이모가 다 먹어버렸어
원 : 그런데 우리 안 먹어도 돼요 괜차나요!
나 : (머쓱)





투 : 모래놀이 하고 시퍼요
나 : 안돼 이현아 금방 아빠 오실거야 모래 놀이 하면 옷 지저분해지잖아
투 : 어 쪼끔만 놀고 아빠가 오실거예요
나 : 아빠 오면 키즈카페 갈건데?
투 : 그래요? 이야~~~ 신난다 (덩실덩실)





추추원의 짧은 에피소드들

1. (아침 등원길에 초코렛 먹으면서)
원 : 초코렛은 왜 살살 녹으지? 이모 왜 초코렛은 살살 녹아요?

2. (내 방에서 놀다가)
원 : 이모 옆으로 와요 이모가 좋아서 이모가 옆으로 오면 조켔서요 이모랑 부트고 시퍼요

3. (우토가 준 티파니 반지 상자를 열어보고선)
원 : 오 멋진데?

4. (거실에서 잘 놀다가 갑자기)
원 : 이모는 키 언제 커요?
나 : (발끈) 야 나 키 다 큰거거든?

5. (유튜브에서 문어가 나오는 장면 보고, 랩하듯이)
원 : 문어는 발판이 있구여 오징어 다리는 10개 문어는 8개 문어는 심장이 세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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