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주는 시간

1105

2023. 11. 6. 04:10

오늘은 내게도 의미있는 날이 된지 오래 됐어. 비록 이번처럼 통째로 잊어버린채 지나버린 적도 있지만.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아직 11월 5일이니 용서해줘. 분명 이 곳의 3일날 밤에 '우리의 시차와 거리따윈 가볍게 넘겨주겠어!' 라며, 한국의 5일 12시 땡할 때부터 축하해서 캐나다의 5일이 끝나기 전까지 축하해야지 하고 마음 먹었는데. 이럴수가. 한국의 5일은 모두 날려버렸지 뭐야. 너는 생일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항에 갔을테고, 지금은 이미 대만에 도착해서 자고 있을 시간이겠구나. 대만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이미 6일이네. 하하. 

 

얼마전 네가 필사한 산문 중에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라는 문장이 기억나. 그 문장이야말로 너의 사랑 표현 방법 중 한가지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더라. 내 생일에 꼭꼭 눌러쓴 편지를 받고, 너의 생일에 기필코 답장을 하리라 다짐했어.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하다 여기에 쓴다. 우리의 편지가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라면서. (그러기엔 내 편지가 좀 적은 편이긴 하지..)

 

한국에서 다시 캐나다로 떠나오기 전, 편지만 모아둔 박스를 정리하다 네가 보내준 편지들을 봤는데 정-말 많았어. 중학교 3학년 때 받았던 까만 도화지 위의 하얀 볼펜으로 적힌 커다란 편지부터 올해 생일에 받은 아이패드 손편지까지. 나의 서툰 결정에도 누구보다 깊은 지지와 응원을 보내줬던 네가 곁에 있었기에 담대한 결정도 해보고 후회도 덜할 수 있었다는 걸 상기하게 되더라.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너와 함께한 지난 날들을 되새기고 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구나 싶어.

 

내가 아는 너는 보기보다 심지가 곧고 보기보다 뚜렷한 사람이야. 선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모든 손길에 배려가 넘치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쉽게 거두지 않는 편이고 생각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사람이야. 또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있는 사람이지. 이런 네 모습을 보며 반성하기도 하고, 많이 배우고 있어. 쓰다보니 다시 한번 깨닫는다. 네가 얼마나 내게 큰 존재인지.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해. 나 또한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아 그리고 요즘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답장에 써달라고 했는데. 음. 나는 인디밴드 취향은 아니었는데, 요즘 한국의 인디밴드 노래를 좀 듣고있어. '기다린만큼 더 - 검정치마'의 노래를 듣고 반해서 듣기 시작했어. 나는 노래 들을 때 가사를 잘 듣는 편이 아니라 가사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에 끌렸어. 인디밴드는 언니네 이발관 말고는 잘 몰라서 처음 듣는 노래들이 많은데 보석같은 노래들이 꽤 많더라구. 발굴의 재미가 있어. 취향을 발견한다는 건 나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인 거 같아. 아영은 음악에 일가견이 있으니 좋은 노래들 추천해줘. 

 

아영아. 5년 전 함께 한 아이슬란드 여행의 기억이 오늘까지도 삶의 고단함을 잊게하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듯이, 이번 대만여행도 그러한 힘이 되는 여행이기를. 그리고 걷고-쓰고-읽는 아영의 모든 날에 해가 뜨길 바라면서 이만 줄일게.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나도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터지는 그 곳의 사진을 첨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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