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8

2026. 6. 11. 19:56


날짜와 요일 개념없이 살고 있는 요즘. 나사가 하나 빠진 채로 일상의 바퀴가 겨우겨우 굴러가고 있다. 어쩌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빠진 걸 수도..

모든 신경이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데 쏠려있고, 쉬는 날에는 부족했던 잠을 몰아자며 바닥난 체력을 보충하기 바쁘다. 그도 그럴 것이 4월 초부터 엉망이 된 내 수면 패턴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호텔을 전전하며 끼니를 거르기 일쑤에다 그마저도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했기에 지금의 몸 상태에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듯. 이렇게 짧은 기간동안에 이렇게 많은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있었는지. 여러모로 스펙타클했던 두 달이었음.


인생을 그저 물 흐르듯이 살던 내게 아주 오랜만에 간절히 원하는 것이 생겼고, 그것을 손에 쥐기 위해 수많은 밤을 눈물로 베겟잎을 적셨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에겐 쉬운 여정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절대 그렇지 않았기에.

내 사주에 부족한 화를 보충하는데 빨간색을 지니고 다니면 도움이 된다해서 빨간 옷과 빨간 양말을 신고 시험 보러 가던 내가 이제 와 생각하면 웃기고 짠해… 하지만 졸업장을 손에 든 나보다도 더 기뻐해준 사람들을 보니, 날밤 새우던 지난날이 결코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늘 추추들이 차지해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내 얼굴이 떡 하니 업데이트 되어서 기절할 뻔 했고, 혹여나 방해될까 카톡 보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던 친구들의 다정한 응원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영상통화하며 울던 내게 힘들면 언제든 집에 돌아와도 된다며 묵묵히 들어주던 WJ까지. 앞으로 내가 갚아야할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였다.


더 크게 돌려줘야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베풀어야지, 하고 다시금 다짐하는 휴일의 마지막 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4시의 짧은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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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만근 같은 몸을 일으켜 아침 일찍 WJ를 따라 나왔다. 시간 안에 해야 할 일들이 줄지어 있어, 쉬는 날 최대한 다이어리에 줄을 그어야겠다는 일념으로. 하지만 일찍 일어남이 무색하게도 황금 같은 아침 1시간을 멍 때리다 흘려보냈다. 그러다 잠도 깰 겸 오랜만에 블로그 방문. 또 최근에 작가로 데뷔하신 친절한기사님이 내 글을 기다린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나서.
 

3월의 밴쿠버. 아직 롱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곳곳에는 부지런히 고개를 내민 벚꽃이 있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는 날씨 예보와 달리, 오늘처럼 해가 비치는 날도 있다. 10년 전에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North or South? 라고 되물었는데, 이제는 "Which part are you from?" 이라고 물어봐서 South라고 답하면 "No, No! Which city are you from?"라는 질문에 되레 당황하는 요즘. 지금 눈 앞에 있는 엄마 아빠의 커피를 함께 기다리고 있던 아기가 지루한지 칭얼대자, 아빠가 번쩍 안아 들어올려 달래주는 모습을 보며 문득 저 아기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떠나보낸 사람들의 부재를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죄책감이 올라오는 복잡스런 오늘.
 



최근에 내가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이게 요즘 나를 얼마나 괴롭히냐면, 두려움이 나보다 커져서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아질 때 마치 퇴마의식처럼 “나는 할 수 있다. 넌 할 수 있어. I'm stronger than I think.” 라고 중얼거리는 지경까지 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때가 시도 때도 없다는 것!!!!! 세수를 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자려고 누웠을 때도. 혼잣말을 거의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건 꽤나 큰 일인 것이다. 내가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하루에도 수백 번을 가지면서도 결국엔 좋은 결과를 손에 쥐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끝낸다. 여기까지 온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그럼에도 여전히 감정에 휩싸일 때면 마이클 조던의 말을 떠올린다. 두려움은 환상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내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두려움 대신 나는 용기를 선택한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도전하는 거니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확신이 없어도 한 걸음 더 내딛어 보자. 그래서 언젠가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적어도 '그때 해 볼걸'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 걸로. 하여튼 잠도 깼으니 이제 다이어리에 줄 그으러 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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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6

2025. 10. 9. 04:33

구름이 잔뜩 낀 오후.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나와서 짐을 담고 있는데, 문득 10년 전 겨울이 떠올랐다. 레인쿠버답게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고, AY이 보내준 샘 스미스의 1집 앨범만 주구장창 들으며 한껏 외롭고 쓸쓸해하던 그 계절을 상기시키는 오늘의 날씨.

아직 겨울 내음은 나지 않는데, 흐린 날씨와 특유의 잿빛 가득한 코스트코 주변 환경 때문인지 그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때는 몰랐지, 내가 여기에 뿌리를 내리며 살게 될 줄이야. 하기야 알았으면 그 때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알 수 없었겠지.

곧 땡스기빙이 다가와서 그런지 코스트코에는 커다란 터키와 펌킨파이가 진열되어 있었고, 평일 오후답지 않게 사람들이 꽤 많았다. 워홀 때 처음 접해본 터키와 크랜베리소스는 그저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또 맛있었던 기억이 나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난 10년동안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다시 돌아온 그 때의 나는 다 큰 줄 알았지만 너무나 어렸고 여렸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지만 동시에 온전히 즐길 수 있었고, 또 의심없이 사람을 믿었고 커다란 슬픔도 없었어.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하려나. 지금의 내가 나인 게 기대된다고 행복하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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