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팟캐스트를 엄청 즐겨 듣는 편은 아닌데, 인생의 어느 구간마다 팟캐스트에서 힘을 얻던 때가 있었다. 연도별로 나열해보자면 2016년엔 송은이x김숙의 비보, 2020-21년엔 김하나x오은의 책읽아웃, 올해는 김하나x황선우의 여둘톡이다. 특정 구간이 캐나다에 머무르던 시기와 맞물리는 걸 보니 심적으로 외로웠기에 불특정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위로를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상과는 다르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안겨주니까. 이게 내가 라디오를 좋아했고, 라디오 작가가 되고싶었던 이유였을런지도.





초반엔 팟캐스트엔 없어서 팟빵 다운 받았음




이 스크린샷을 찍은 날은 시간대별로 나름 계획을 세워놓은, 내게는 잘 없는 날이었는데 유난히 계획대로 안되던 날이었다. 하지만 계획보다 더 멋진 하루를 보냈던 날이다. 혼자서 강남과 용인, 이태원, 용산을 돌아다니며 할 일과 하고싶었던 일을 하며 바깥 구경 신나게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특히나 즐거웠는데 그건 바로 여둘톡 덕분이었다.


매주 화요일에 올라오는 여둘톡은 내게 새로운 낙이 되었다. 찰스와 산책을 하거나 러닝을 하러 가는 소중한 시간에 귀하게 아껴듣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님들이라 책이나 SNS에서 자주 만나지만, 팟캐스트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다. 내게 다정하고 멋진 언니들이 두 명 더 늘어난 기분이랄까🤍









여둘톡에 올라온 에피소드 모두 다 좋았는데, 특히 두번째 에피인 '40대의 인생도 꽤 괜찮아'는 내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 친구가 꽃 좋아지면 나이든 거라는데, 하며 한숨과 함께 꽃사진을 보내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꽃의 아름다움을 잘 알게되는 나이가 된 거 아닐까요?

- 그렇죠. 더 어린 나이에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럴수도 있고, 자연보다는 인공적인 것들에 더 관심을 빼앗겨서 그럴수도 있고. 내지는 스스로가 젊고 어리고 활기차고 이런 세계 속에 있다보면은 외부에서의 어떤 생기, 생명력 이런 것에 감흥이 덜하기도 한 거 같아요.

- 저도 갈수록 꽃이 참 예쁘고 겨울의 앙상한 가지들이 조금씩 조금씩 눈이 커지다가 봄이 되서 밝은 꽃들이 툭툭 피어나기 시작하는 거 보면, 산수유부터 시작해서 그게 너무 경이롭잖아요. 갈수록 참 경이로운 생각이 들고 그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너무 예뻐서 아 옛날에는 내가 이런 예쁨, 이런 아름다움을 몰랐구나. 그런데 나이드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구나. 아름다운 게 늘어나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우토와 산책을 할 때면, 우토는 길가에 핀 꽃과 나무에 취해 한참을 서있는다. 나는 멈추지 않고 원래 속도를 유지하며 걷거나, 멀뚱히 뒤에 서서 사진을 찍는 우토를 바라보곤 했는데 올해 내 사진첩엔 꽃과 나무, 구름과 하늘로 가득하다.

드디어 나도 아름다운 게 늘어난 것이다! 어르신들이 카톡 프로필에 꽃 사진을 올려두는 걸 이해하게 되는 나이가 됐다는 뜻이고. 나이 드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 늘어나는 일이라는 말에 너무나 공감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특히 러닝을 시작하고, 자주 산(이라 부르지만 동네 언덕)을 오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유난히 감탄하던 요즘이었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의 제목처럼 두 작가님들은 40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밑줄 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서 몇 번이고 돌려 들으며 메모장에 기록했다. 나보다 먼저 40대를 경험하는 언니들이 40대도 꽤 괜찮다고 말해주니 한편으로 내 40대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과연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약국에 갔을 때 어머니라고 호칭을 한다거나, 왜 40대 여성이면 당연히 자녀를 두고 있고 자녀의 보호자로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우리가 조금 더 개인을 개인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왜 사람을 하나씩 떼어서 생각하지 못할까?




이건 내가 일상생활에서 의식적으로 노력해오고 있는 부분이어서 더 공감이 갔다. 그러나 이 노력을 딱히 뭐라고 말해야할지 정리가 안됐던 상태였는데 '개인을 개인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라는 말에서 아주 명쾌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 남편이~ 같은 말을 자주 쓰는데 왜 나는 우리 남편이~ 같은 말을 잘 쓰지 않는지 깨달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관계에서 부여된 호칭'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나'로 불리는 걸 더 선호하기에 상대방도 그렇게 불러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해서 어떤 틀에 묶이고 싶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는 아내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편의 만족도는 모르겠지만요 🙄



어느날 아침, 언니가 내게 보내온 메세지




추추들이 자라면서 관계에서 부여될 역할에도 충실하면 좋겠지만, 그 전에 먼저 자신을 자신으로 바라보는 경험부터 충분히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동생이니까 오빠한테 양보해, 오빠니까 동생을 지켜줘와 같은 말 대신에 할 수 있는 말은 무수히 많으니까.



무알콜 칭따오보다 허니버터칩을 더 선호하는 나




여둘톡의 모토가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라 매번 에피마다 두 작가님이 좋아하는 걸 소개해주신다. 일명 영업한다고 말하는데, 에피 2에서 무알콜 칭따오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저 날 행복에 취했던 나도 영업 당해서 편의점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허니버터칩(흰색이 더 맛있는데 노란색 뿐이었음)이랑 같이 사왔다.


저 날도 기분에 취해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켰다가 두 세줄 쓰고 칭따오랑 과자만 먹고 잤던 기억.이미 한 달이 지난 기억이지만 이제서야 올리는 나는 으른이다. 게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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