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한 채로 동네 카페 갔던 아침



우토야, 안녕.
매년 결혼기념일이 그랬듯, 이번도 뇌리에 남을 기억이겠다.
밤새 끙끙거리던 너와 그 옆에 쪼그려자던 나.
특별한 일 하나 없는 날이지만,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는 하루야.



첫번째 알람이 울리고, 두번째 알람이 울리기 전에
꾸벅 선잠에 들었는데, 우리가 웨딩촬영을 하는 꿈을 꿨어.
이상하게도 배경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인데
이름만 같았지 풍경은 전혀 달랐고
그 곳에는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들이 많았어.

사진에서만 봐왔던 여러가지 컨셉들이 보여서 신기했는데,
우리는 웨딩촬영을 예약하지 않아서
그 곳에 있던 작가에게 급히 부탁하는 꿈이었지 뭐야.
우리에게 일어날 법한 일이어서 그랬는지
꿈에서도 어이없고 웃겼어.



너는 출근을 하고, 나는 근처 맥날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어.
쓰기 전까지 할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실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









갑자기 너와 만나기로 결정하던 그 날이 떠오르네.
7년 전 오늘이었지.

그 때 내 카톡 프로필 메세지는 ‘미래로 나아가자’ 였고
혼자 배에서 노를 젓고 있던 그림이었는데,
너에게 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나.
(생각해보니 이 말도 참 나답네.
둘이 노 저어서 함께 가는 게 아니고,
혼자 노 저어서 너한테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거)


그 때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열심히 노 저어서 너에게 갔다가
둘이 함께 노 저어서 여기까지 오리란 걸.

아마 몰랐을거야.
너와의 만남은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렇게 길게 가리라 예상은 못했었거든.


사람을 만나고 떠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나여서
너와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인생에 결혼이란 걸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오늘을 정말 상상도 못했을거야.







얼마 전 승현이랑 단둘이 자던 밤이 있었어.
불을 다 끄고 누워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지.
승현이에게 꿈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자기는 꿈을 꾸기 싫대.
왜냐고 물었더니 괴물이 나올까봐 무섭대.

그래서 내가 승현이를 사랑하는 요정은
승현이에게 멋있고 귀엽고 이쁜 꿈만 보여줄거라고 했는데도
꿈을 안 꾸고 싶대.
그러면서 묻더라? 꿈을 왜 꾸는거냐고.

뭐라고 말을 해줘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꿈이었나? 이렇게 말할려고요?“ 라고 말했어.





너도 알다시피 원래 나는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잖아.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를 봐오면서
행복한 가정을 대한 그림을 그린 적이 별로 없거든.

내가 봐왔던 것만이 전부인 양 믿었던 어린아이였지.
그런 일이 없으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게
원인을 제공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었겠지?
나라는 사람이 원체 방어기질이 있는 편인데다
알을 깨고 나갈 수 있다는 믿음도 없었나봐.


그런 내가 너와의 결혼생활을 6년을 했네.




그동안 나 어땠어?


많이 부족했지.
너를 많이 헤아려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돈을 많이 벌어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매일 맛있는 걸 해준 것도 아니고.
여전히 불안한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에 살게 하고 있으니.

어느 하나 좋은 걸 안겨주지 못했네.

아픈 걸 알면서도 출근시켜야 했던 오늘이
어찌나 미안한지 모르겠다.






다시 승현이와의 대화로 돌아가자면
승현이는 어쩌면
나처럼 방어기제가 있는 아이일 수 있겠다 생각했어.
그래서 말을 잘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


뭐, 큰 도움은 안될 수 있어도
살면서 이 말을 떠올리면 작은 용기는 생길까 싶어서.
자기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이모가
그리고 적어도 자기보다 30년을 더 살아본 사람이 해준 말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도 있잖아?




“승현아. 그저께 먹었던 닭다리 과자 기억나지?
승현이가 안 먹어본 과자여서 안 먹겠다고 했잖아.
그렇게 좋아하는 꼬꼬가 그려진 과잔데도.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까 어땠어? 맛있었지?

그 때 이모가 그랬잖아.
맨날 먹던 거 말고 새로운 걸 도전해보면
맛있는 과자를 찾게 될 수도 있다고.
그랬더니 승현이가 뭐라 그랬어?
마법 같다고 박수 쳤잖아.

꿈을 안 꿔봐서 꿈이란 게 무서울 수 있지만
막상 꿔보면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나는 꿈,
슈퍼카를 타고 씽씽 달리는 꿈같이
엄청 멋진 꿈을 꿀 수도 있어.

만약 꿈꾸기 싫으면 안 꿔도 되.
뭐든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그런데 또 막상 해보면 재밌을 수도 있을거야.”







나에게 지난 6년은 마법과 같았어.


맛없을 거 같아서 고르지도 않던 과자가
이젠 최애가 되어버린 수준을 넘어섰지.
그냥 새로운 세계가 열려버린거야.
매번 이럴 수도 있다고? 를 외쳤지.
(감탄 또는 한탄… 중의적 표현)
누군가 나를 꼰대라 불러도 결혼이란 거
인생에서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하다고 말할거야.



해보지도 않았던 결혼을 두려워했던 나에게
결혼이란 게 얼마나 행복한건지,
서로가 얼마나 소중해질 수 있는지,
부부가 된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건지 알려줘서 고마워.



음 어쩌면 네가 아니었어도 결혼을 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분명 이와 같진 않았을거야.
아냐. 나는 네가 아니었으면 영영 몰랐을거야.



우리가 걸어온 모든 순간이 꽃길은 아니었지만
너는 매순간 내게 꽃다발을 안겨줬어.
꽃다발을 준비했을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일인지 이제 알아.


만약에라도 어느 순간
‘꿈이었나?’ 하며 잠에서 깬다면 얼마나 슬플까.
영영 깨고 싶지 않을 꿈일거야.


앞으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가 함께한 모든 시간 영원히 박제.
내가 먼저 죽으면 너 무조건 순장. 알지?



나의 영원히 깨지않을 꿈같은 사람아.
결혼 6주년 축하해.
그동안 건강히 옆에 잘 있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항상 건강만 해줘. 사랑해.




2022년 1월 31일,
6번째 결혼기념일에 조이가.



https://youtu.be/kTxHcHvUw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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