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상실의 시대

2022. 4. 6. 20:14


동생이 떠난 후, 사람들에게 그의 부재를 종종 말해야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는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그 중 가장 뇌리에 박혀있는 기억은 토론토로 막 이주했던 2016년 초여름으로 향해가던 5월이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집을 구하기 전까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임시숙소에서 머물렀다. 숙소 주인은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의 한국인 중년 부부였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쭈뼛쭈뼛 서로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으레 하는 인사치레와 같은 질문이 오갔다.

어디에서 왔냐, 어떻게 토론토로 오게 됐냐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형제는 어떻게 되냐에 대한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언니와 나, 둘이라고 말했다. 숙소 주인은 내 형제가 둘이든 셋이든 알 길 없고, 사실이 무엇이든 상관없겠지만 나는 그 대답이 지금 이 순간까지 아프게 남아있다.




당시에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던 우토가 방에 들어와서 조심히 물었다. "왜 둘이라고 대답했어?"

"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서." 와 같이 얼버무리듯 말했던 거 같은데, 정확히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자세히 기억은 안난다.

혹시나 언니나 동생은 뭐하냐고 물으면 동생은 하늘나라에 갔다고 말하는 게 힘들었고, 또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나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까봐 걱정이 되서였다. 그리고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기도 했고.










담담하게 동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얼마 안됐다. 처음 소식을 듣고 울부짖던 그 때를 떠올리면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지만, 벌써 7년이 흘렀다.

시간은 만물을 여물게 한다는 말처럼 내 마음도 여물게 해줬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살펴준 덕분과 심리상담을 통해 묵혀두었던 감정을 쏟아내고 난 후 많이 괜찮아졌다. 고통을 직면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과정을 충분히 겪어내고 나니 단단해진 것 같다.





그동안 만났던 엑스들과의 이별도 늘 그래왔다. 헤어지고 난 후, 상실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우울하고 슬픈 감정에 빠진 나를 그대로 두고, 바닥을 치고 올라오길 기다렸다. 일부러 슬픈 음악을 찾아듣고, 나중에 보면 이불킥을 할 흑역사가 가득 담긴 글을 쓰고, 눈물이 나면 그냥 울면서 저절로 치유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동생과의 이별도 마찬가지다. 그저 상실의 크기가 아주 컸기에 받아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손예진이 나온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 서른 아홉의 마지막회를 오늘 보았다. 드라마 단골 소재인 시한부와 입양에 대해 다룬 드라마인데, 흔한 소재임에도 다양하게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좋았다. 덕분에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내 죽음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괜히 센치해져 동생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예전부터 생각만 해왔던 내 죽음과 관련해 공개적인 글을 하나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생이 떠나고 난 후, 죽음은 내게 삶처럼 아주 가까운 단어가 되어서 종종 이런 글을 쓰게 된다. 나는 더 건강해지기 위해 쓰는 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 않기만을 바란다.



'별 헤는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이 바람에 스치울 때  (4) 2022.06.16
비가 오는 주말 아침에  (4) 2022.03.19
어둠이 내려야 별이 보인다  (0) 2022.01.31
2022년 1월 30일의 단상  (0) 2022.01.30
메리 크리스마스  (0) 2021.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