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에 꿀이 떨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꿀이 방울방울, 컵의 바닥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아침.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는 표현이랑 닮은 게 있을까? 배우들은 상대 배우를 사랑하지 않아도 꿀이 흘러나오는 눈빛을 연기하던데. 그러고보니 조정석 배우가 그런 연기를 참 잘하는 거 같네.' 하며 의미없이 흘러가는 생각들.




불확실한 관계에서 오는 불안함. 내 뜻대로 흘러갈 수 없고, 그렇다고 흘려보낼 수도 없는 상황은 무기력을 자아낸다. 아주 가끔 통제할 수 없는 괴로움에 빠질 때,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SNS 랜덤 피드를 본다. 자학임을 분명히 인지한 채로 행하는 일이다. 해가 뜨면 녹차에 꿀을 타 마실거면서. 앞으로 거침없이 걸어 나아가고 싶은데 어두워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 랜턴과 지도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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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상실의 시대

2022. 4. 6. 20:14


동생이 떠난 후, 사람들에게 그의 부재를 종종 말해야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는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그 중 가장 뇌리에 박혀있는 기억은 토론토로 막 이주했던 2016년 초여름으로 향해가던 5월이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집을 구하기 전까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임시숙소에서 머물렀다. 숙소 주인은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의 한국인 중년 부부였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쭈뼛쭈뼛 서로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으레 하는 인사치레와 같은 질문이 오갔다.

어디에서 왔냐, 어떻게 토론토로 오게 됐냐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형제는 어떻게 되냐에 대한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언니와 나, 둘이라고 말했다. 숙소 주인은 내 형제가 둘이든 셋이든 알 길 없고, 사실이 무엇이든 상관없겠지만 나는 그 대답이 지금 이 순간까지 아프게 남아있다.




당시에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던 우토가 방에 들어와서 조심히 물었다. "왜 둘이라고 대답했어?"

"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서." 와 같이 얼버무리듯 말했던 거 같은데, 정확히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자세히 기억은 안난다.

혹시나 언니나 동생은 뭐하냐고 물으면 동생은 하늘나라에 갔다고 말하는 게 힘들었고, 또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나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까봐 걱정이 되서였다. 그리고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기도 했고.










담담하게 동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얼마 안됐다. 처음 소식을 듣고 울부짖던 그 때를 떠올리면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지만, 벌써 7년이 흘렀다.

시간은 만물을 여물게 한다는 말처럼 내 마음도 여물게 해줬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살펴준 덕분과 심리상담을 통해 묵혀두었던 감정을 쏟아내고 난 후 많이 괜찮아졌다. 고통을 직면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과정을 충분히 겪어내고 나니 단단해진 것 같다.





그동안 만났던 엑스들과의 이별도 늘 그래왔다. 헤어지고 난 후, 상실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우울하고 슬픈 감정에 빠진 나를 그대로 두고, 바닥을 치고 올라오길 기다렸다. 일부러 슬픈 음악을 찾아듣고, 나중에 보면 이불킥을 할 흑역사가 가득 담긴 글을 쓰고, 눈물이 나면 그냥 울면서 저절로 치유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동생과의 이별도 마찬가지다. 그저 상실의 크기가 아주 컸기에 받아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손예진이 나온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 서른 아홉의 마지막회를 오늘 보았다. 드라마 단골 소재인 시한부와 입양에 대해 다룬 드라마인데, 흔한 소재임에도 다양하게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좋았다. 덕분에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내 죽음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괜히 센치해져 동생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예전부터 생각만 해왔던 내 죽음과 관련해 공개적인 글을 하나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생이 떠나고 난 후, 죽음은 내게 삶처럼 아주 가까운 단어가 되어서 종종 이런 글을 쓰게 된다. 나는 더 건강해지기 위해 쓰는 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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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첫 기록이라니. 마음이 저 멀리 콩밭에 가있었나. 정신없이 지낸만큼 정리가 안되는 나날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30일 글쓰기 챌린지가 끝난 이후부터다. 하루를 마감하듯 매일 발행하던 글을 쓰지 않으니 생각이 뒤죽박죽이다.





1.
요즘 내가 ADHD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곤 한다. 증상 중 '한가지 일을 하다가 어느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라는 문항 때문이다. 집중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진 않지만, 집중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영향이 크다. 손바닥만한 놈이 온 세상을 담고있으니 이보다 자극적인 게 있을까.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쓸데없는 알림이 싫어 전화나 문자, 개인 카톡 이외엔 알림을 모두 꺼두었다. 알림이 울리면 자연스레 시선이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손이 가는 건 어떻게 해야할까?



북클럽 팀원이 노잼시기로 고민할 때 샘별샘이 뽀모도로 타이머를 추천해주셔서 알게 되었다. 당시 시간관리와 집중력때문에 고민했을 때라 구매를 할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애플워치로 타협을 봤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라며 애플워치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건만 쉽지가 않다. 역시 뭐든 장비빨인가...





2.
혼자서도 성실히 잘해내면 좋겠지만 어느정도 강제성이 부여되야 겨우 꾸준히 하는, 나는 의지가 박약한 인간이다. 그걸 알기에 각종 챌린지에 신청하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엔 스멀스멀 러닝 챌린지가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이미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시간관리가 필요한 와중에 무언가가 또 하고싶다니.


'음... 러닝을 하면 신체가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정리된다고? 영혼까지 변할 수 있다니 안할 이유가 없겠는걸? 호호호' 하며 챌린지를 알아보고 있는 새벽의 나. 꾸준함도 실력이라는 말을 외쳤던 과거의 내가 무색할 지경이다.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보는 정신은 성장 마인드셋에 도움을 주지만, 꾸준히 하지 못해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건 멘탈에 큰 타격을 준다.


우선 벌려놓은 일 중 우선순위를 고르고, 나머지는 정리를 하자. 시작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제대로 끝을 맺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리고나서 러닝 챌린지 신청을 해볼까아... 주위에 러닝메이트가 있으면 좋겠다. '아니 한강 근처 살았으면 이미 러닝 뛰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토론토에서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 하버프론트였는데 안 뛰었던 나... 입 다물자.





3.
인생영어 심화반에 5년 후의 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과제가 있다. 그런데 나는 끝내 제출을 안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구상 중이기 때문이다. 나도 참 웃긴 게 다른 건 후딱후딱 대충대충 하면서 5년 후의 나에 대해 말하는 게 참 어려웠다. 얼추 발표 준비까지 다했지만 발표를 하고싶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래를 그리는 일이 어려워서 심리상담까지 받았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여튼 그 과제를 하면서 5년 뒤 우리집 거실에 있을 스피커를 (상상 속에서) 구매했었다. 바로 월넛 색상의 제네바 XL사이즈였다. 욕심을 내려놓고 추리고 추려가며 '5년 후에는 이 정도가 적당하겠어.' 하고 고심 끝에 고른 스피커였다.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지난 일요일, 곧 친구의 생일이라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제네바 월넛 XL 스피커가 보였다. 물욕이 그닥 없는 내게 아주 간만에 소유욕을 안겨준 물건이 바로 눈 앞에,,, 헉 당장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틀어주세요!!!


층간소음이 우려되 볼륨을 작게 틀고 들어서 그런지 아쉽게도 가슴이 울릴만한 웅장함은 없었다. 친구는 층간소음때문에 집에서 듣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그럼 5년 후 우리집에는 방음벽을 설치한 오디오방을 따로 만들어야겠다. 후후후. 상상 속에서만 들었던 제네바의 소리를 직접 듣는 경험을 해본 건 즐거운 일이었다. 다른 스피커들의 소리도 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요새 오디오 리스닝룸이 많이 생겼던데 조만간 방문해봐야겠다.

 

 

 

추추투가 직접 그린 '마스크를 쓰고 있는 본인'




4.
추추들이 코로나에 걸렸다. 졌지만 잘 싸웠다!


맨 처음 확진을 받은 건 추추투.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난 이후다. 약 일주일 간의 잠복기가 있었다. 미열이 조금 있는 거 제외하고는 큰 증상은 없다. 추추투 확진 이후에 추추원도 5일의 잠복기를 거쳐 오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추추원은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나도 신속항원을 받으러 갔는데 재외국민이다보니 건강보험 문제로 의료비가 9만 5천원이 나왔다. 내가 어젯밤 해본 똑같은 자가키트로 의료진이 내 코에 찔러준 거 뿐인데... 미국에 살면 병원 한 번 갔다가 몇 천만원 빚을 지고 나온다는 그런 끔찍한 기분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꼈다. 



5.
아침 일찍 일어나 무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본다. 뾰족한 아웃풋도 없고, 배울 것도 없는 글이지만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다. 내게 글을 쓰는 일은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일과 비슷하다. 좋은 음식도 생각없이 주워 먹다보면 체하기 마련인데, 이로운 정보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정보라고 해도 내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요근래 마음이 조급해져서 좋다는 건 다 시도해보고 있다. 뭐 하나 걸리겠지! 하는 그런 마음. 그러다보니 더욱이 깊이 새길 것을 찾기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내 것으로 체득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정통적인 방법 뿐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우선순위에 집중을 해야한다. 

 

비가 오는 주말이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미래를 그리는 일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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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한 채로 동네 카페 갔던 아침



우토야, 안녕.
매년 결혼기념일이 그랬듯, 이번도 뇌리에 남을 기억이겠다.
밤새 끙끙거리던 너와 그 옆에 쪼그려자던 나.
특별한 일 하나 없는 날이지만,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는 하루야.



첫번째 알람이 울리고, 두번째 알람이 울리기 전에
꾸벅 선잠에 들었는데, 우리가 웨딩촬영을 하는 꿈을 꿨어.
이상하게도 배경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인데
이름만 같았지 풍경은 전혀 달랐고
그 곳에는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들이 많았어.

사진에서만 봐왔던 여러가지 컨셉들이 보여서 신기했는데,
우리는 웨딩촬영을 예약하지 않아서
그 곳에 있던 작가에게 급히 부탁하는 꿈이었지 뭐야.
우리에게 일어날 법한 일이어서 그랬는지
꿈에서도 어이없고 웃겼어.



너는 출근을 하고, 나는 근처 맥날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어.
쓰기 전까지 할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실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









갑자기 너와 만나기로 결정하던 그 날이 떠오르네.
7년 전 오늘이었지.

그 때 내 카톡 프로필 메세지는 ‘미래로 나아가자’ 였고
혼자 배에서 노를 젓고 있던 그림이었는데,
너에게 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나.
(생각해보니 이 말도 참 나답네.
둘이 노 저어서 함께 가는 게 아니고,
혼자 노 저어서 너한테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거)


그 때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열심히 노 저어서 너에게 갔다가
둘이 함께 노 저어서 여기까지 오리란 걸.

아마 몰랐을거야.
너와의 만남은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렇게 길게 가리라 예상은 못했었거든.


사람을 만나고 떠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나여서
너와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인생에 결혼이란 걸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오늘을 정말 상상도 못했을거야.







얼마 전 승현이랑 단둘이 자던 밤이 있었어.
불을 다 끄고 누워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지.
승현이에게 꿈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자기는 꿈을 꾸기 싫대.
왜냐고 물었더니 괴물이 나올까봐 무섭대.

그래서 내가 승현이를 사랑하는 요정은
승현이에게 멋있고 귀엽고 이쁜 꿈만 보여줄거라고 했는데도
꿈을 안 꾸고 싶대.
그러면서 묻더라? 꿈을 왜 꾸는거냐고.

뭐라고 말을 해줘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꿈이었나? 이렇게 말할려고요?“ 라고 말했어.





너도 알다시피 원래 나는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잖아.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를 봐오면서
행복한 가정을 대한 그림을 그린 적이 별로 없거든.

내가 봐왔던 것만이 전부인 양 믿었던 어린아이였지.
그런 일이 없으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게
원인을 제공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었겠지?
나라는 사람이 원체 방어기질이 있는 편인데다
알을 깨고 나갈 수 있다는 믿음도 없었나봐.


그런 내가 너와의 결혼생활을 6년을 했네.




그동안 나 어땠어?


많이 부족했지.
너를 많이 헤아려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돈을 많이 벌어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매일 맛있는 걸 해준 것도 아니고.
여전히 불안한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에 살게 하고 있으니.

어느 하나 좋은 걸 안겨주지 못했네.

아픈 걸 알면서도 출근시켜야 했던 오늘이
어찌나 미안한지 모르겠다.






다시 승현이와의 대화로 돌아가자면
승현이는 어쩌면
나처럼 방어기제가 있는 아이일 수 있겠다 생각했어.
그래서 말을 잘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


뭐, 큰 도움은 안될 수 있어도
살면서 이 말을 떠올리면 작은 용기는 생길까 싶어서.
자기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이모가
그리고 적어도 자기보다 30년을 더 살아본 사람이 해준 말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도 있잖아?




“승현아. 그저께 먹었던 닭다리 과자 기억나지?
승현이가 안 먹어본 과자여서 안 먹겠다고 했잖아.
그렇게 좋아하는 꼬꼬가 그려진 과잔데도.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까 어땠어? 맛있었지?

그 때 이모가 그랬잖아.
맨날 먹던 거 말고 새로운 걸 도전해보면
맛있는 과자를 찾게 될 수도 있다고.
그랬더니 승현이가 뭐라 그랬어?
마법 같다고 박수 쳤잖아.

꿈을 안 꿔봐서 꿈이란 게 무서울 수 있지만
막상 꿔보면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나는 꿈,
슈퍼카를 타고 씽씽 달리는 꿈같이
엄청 멋진 꿈을 꿀 수도 있어.

만약 꿈꾸기 싫으면 안 꿔도 되.
뭐든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그런데 또 막상 해보면 재밌을 수도 있을거야.”







나에게 지난 6년은 마법과 같았어.


맛없을 거 같아서 고르지도 않던 과자가
이젠 최애가 되어버린 수준을 넘어섰지.
그냥 새로운 세계가 열려버린거야.
매번 이럴 수도 있다고? 를 외쳤지.
(감탄 또는 한탄… 중의적 표현)
누군가 나를 꼰대라 불러도 결혼이란 거
인생에서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하다고 말할거야.



해보지도 않았던 결혼을 두려워했던 나에게
결혼이란 게 얼마나 행복한건지,
서로가 얼마나 소중해질 수 있는지,
부부가 된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건지 알려줘서 고마워.



음 어쩌면 네가 아니었어도 결혼을 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분명 이와 같진 않았을거야.
아냐. 나는 네가 아니었으면 영영 몰랐을거야.



우리가 걸어온 모든 순간이 꽃길은 아니었지만
너는 매순간 내게 꽃다발을 안겨줬어.
꽃다발을 준비했을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일인지 이제 알아.


만약에라도 어느 순간
‘꿈이었나?’ 하며 잠에서 깬다면 얼마나 슬플까.
영영 깨고 싶지 않을 꿈일거야.


앞으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가 함께한 모든 시간 영원히 박제.
내가 먼저 죽으면 너 무조건 순장. 알지?



나의 영원히 깨지않을 꿈같은 사람아.
결혼 6주년 축하해.
그동안 건강히 옆에 잘 있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항상 건강만 해줘. 사랑해.




2022년 1월 31일,
6번째 결혼기념일에 조이가.



https://youtu.be/kTxHcHvUw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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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지은 우토의 까치집




6번째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만난 우리는


목감기에 걸려 아프다고 골골 대던 우토는
같이 먹었던 점심이 호되게 체했는지
집에 와서 속을 다 게워내곤, 겨우 잠이 들었다.


그 옆에 앉아 한참을 손을 주물러주다,
올드 무비 ost 플레이리스트를 켜놓고
읽고 싶었던 소설을 다운 받았다.


우토가 잠이 들면 책상에 앉아
해야할 일들을 좀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지금만큼은 나에게
네 곁에서 보내는 따듯한 시간을 선물해줄까 한다.


너도 따스히 잘자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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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상점들은 문을 닫는다.

유토와 오늘 하루를 함께 보냈다.
크리스마스같지 않은 크리스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래왔듯이
이번 파도도 무사히 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바다는 다시 잔잔해질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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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릎을 베고 잠든 찰스



요즘 제일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는 나이 먹으니까, 나이 들어서, 나이 드니까. 이런 말은 뭔가 꼰대 같고, 스스로를 나이로 저평가 하는 기분이 들어서 앞으로는 나이 이야기 다음에 부정적인 말이 뒤따르는 걸 삼가려 한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늘 하시던 '비 오기 전 날에 삭신이 쑤신다'는 말을 어렴풋이 알겠다. 한 번 밤을 새면 며칠간 컨디션이 확 망가진다는 것도 느끼고.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잘 붓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체력 또한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감기가 잘 떨어지지 않아 거의 두 달째 달고 사는 중이다. 이제는 필수불가결이라는 영양제 챙겨 먹기와 운동을 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가. 휴...


어쨌거나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이 많다는 거다. 우선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을 때, 고민하지 않고 노래를 선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기분에 쏙 들어맞는 음악을 쓱 골라 듣는 그 기쁨이란! 물론 10년, 20년 전에도 좋아하는 노래는 많았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는 있었지만 그 때는 순위권에 있는 노래를 위주로 들었다면, 지금은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여러 음악을 접하면서 취향이 생겼다.

나이를 먹으면 취향이 확고해지고 자아가 강해진다는데, 이 때 노력하지 않으면 그저 지금까지의 경험에만 빗대어 판단하게 되는 상태 그대로 굳어져버릴 거 같아 두렵다. 그런데 어쩌면 이전보다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는 시대에 살다보니, 내 윗세대보다는 유연해지는 일이 더 쉬울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지 않고, 현재의 내가 평생의 나일 수 없듯이, 취향은 변하고 사고도 변한다. 몰랐던 음악을 듣고 보면서 귀가 열리는 경험을 겪고나니, 언제 어디서든 새로이 만나게 되는 음악이 기대가 되는 것처럼, 열린 마음으로 지내면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하자. 그럼 좀 더 다양해진 나를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또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은 무던해진다는 점이다. 타고난 기질 자체가 기복이 심하거나 까탈스러운 편은 아니긴 해도, 나이가 들면서 더 무던해지는 거 같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쉬이 넘길 수 없었을 어려움도 이제는 이 또한 언젠가는 흘러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품고,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온 이유가 분명 있을거라는 믿음 아래.

이게 또 회피랑은 다르다. 회피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꼭꼭 덮어놓고 들춰보지도 않는거라면, 이건 그냥 내 마음 하나만 달리 먹는거다. 마음 하나만 바꾸면 사소한 감정싸움부터 도저히 답을 모르던 일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또 흘러가있다. 내가 이상하게 약간 집착하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그릇이다. '내 그릇이 작아서, 또는 저 사람의 그릇이 커서'와 같은.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공한 사람보다는 그릇이 큰 사람. 그래서 마음을 바꾸는 순간, 내 작던 그릇은 깨지고 조금은 더 커진 그릇으로 바뀌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그런데 그렇다고 무던한 게 꼭 좋다는 말이 아닌 게, 본인을 살피는 법을 모르면 정말로 괜찮아서 무던하게 넘어가는 건지, 좋은 게 좋은거라며 무던한 척 넘어가는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토를 만나서 배운 좋은 것 중 하나는 자기 감정에 솔직하기다. 본인이 본인을 속이는 건 제일 용납 못하는 우토. 나는 어려워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첫번째 방법을 우토는 잘하는 편이다.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하고, 슬플 때 마음껏 슬퍼하는 단순한 감정표현도 매우 풍부하다. 가장 가까이에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은거다. 큰 복으로 여긴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나이는 어디로 먹었어?'는 여러 뜻을 담고 있다. 동안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도 하지만, 나이가 그저 숫자에 불과한 사람들에게도 한다. 성찰하지 않는 하루가 모인 일년이, 또 한 해 두 해 모여 그 나이가 됐다는 뜻으로 하는 말일테니. 나는 나이 아주 맛있게 잘 먹을거다. 그래서 나중에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을 잔뜩 써내려 가고 싶다. 열심히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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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I like myself

2021. 11. 5. 14:50


1. 불면증과는 거리가 먼 타입으로 꿈도 잘 꾸지 않는 (혹여나 매일 꾼다해도 일어나서 꿈을 꿨다는 기억조차 없음) 숙면러인데 요즘은 꿈을 자주 꾼다. 얘기조차 해본 적 없던 중고등학교 동창이 나오질 않나, 배우 김선호가 나와서 억울하다고 말을 하기도 하고(?). 게다가 언젠가부터 생긴 잠버릇인데 손으로 머리를 빗는다. 자면서도 '하아- 내가 또 머리를 빗고있네.' 하고 인지하지만 멈추기가 쉽지 않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유독 그러는 거 같은데, 그게 싫어 머리를 묶고 자는데 잠결에 묶은 머리까지 풀러가며 빗고있는 요즘의 나.


2. 좋은 게 좋은 거 하며 단순하게 생각하는 성향인데, 그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는 자주 돌아보려 한다. 책을 읽다가 내가 왜 문장에 줄을 그었지? 내가 왜 이 단어가 눈에 들어오지? 하고 따라가다보면 어느 지점에 멈춰있는 나를 만난다. 오늘의 나는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데, 그 때의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려 아직 여기에 머물러있구나. 하고 이야기를 건넨다. 그렇게 파내다보면 애써 무시하고 있던 커다란 돌부리가 턱- 걸린다.


3. 28개월 된 둘째조카 추추투는 말이 제법 늘었다. '와, 벌써 이런 문장까지 구사할 줄 알아?'하며 놀라기 부지기수인데, 내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 세번쯤 더 말해줬는데도 못 알아 듣고 있으면 어김없이 소리를 지른다. "임모!!! 포크레인이 왜 땅을 파고 있냐고요!!!!!!!"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시길 '유아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름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유창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을 큰소리 내는 것으로 표현한다. 대부분 부모는 아이의 감정보다 나쁜 행동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 야단치는데, 소리를 지를 만큼 화가 났던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는 것이 첫번째다.'

부정적인 감정도 나의 것인데, 그걸 어떻게 다뤄야할지 여전히 어렵고 또 잘 모른다. 추추투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냅다 울어버릴 수도 없고. 회피하는 게 가장 쉬운데, 그렇다고 그게 편하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감정을 건강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4. 나 자신을 아는 것만큼 나를 사랑하는 일은 없는 거 같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에. 나를 더 알아 갈거고 사랑할거라는 오늘의 생각. From now on, whenever you think of any difficulty you simply say I like myself. - Brian Tracy

"포크레인 멈춰!" 하고 있는 추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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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경계

2020. 9. 11. 09:12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미래를 내세워 오늘  일을 흐리지  

 

박노해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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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Dear.

2018. 6. 7. 13:19




영식아. 오늘 우리 영식이 생일이어서 누나 꿈에 찾아왔는지, 아니면 누나가 밤새 네 생각하다 잠들어서 꿈에 나왔는지. 그런데 오늘 누나는 꿈에서마저 널 놓쳤구나. 아침에 눈뜨자마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오랜만에 우리 만났는데. 떠나가는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가방 메고 서둘러 나오는 널 발견하고 떠나가는 버스에서 뛰어내려 널 찾으러 갔는데. 결국 못 잡았네. 정말로 누나도, 엄마도 너의 손을 잡고 싶었어. 서운한 너의 얼굴이 마지막 모습인 채 꿈에서 깬 게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다시 잠들면 만날 수 있을까, 울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만날 수 없었지.


그리고 일어나서 바로 미역국을 끓였단다. 여기는 아직 생일 전이라서 오늘은 어묵국을 끓이려고 했는데, 네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어. 끓이는 내내 영식아,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하면서 오늘 꿈에서 일어났던 일도 사과하고 영식이 생각도 좀 하고 그랬어. 그리고 저녁에 유토랑 미역국 맛있게 먹었어. 점심에 유토가 영식이 생일 축하해주고 싶다고 뭐 해줄 수 있을까 물어보길래 내가 미역국 맛있게 먹으면 된다고 그랬거든. 그래서 우리 되게 맛있게 먹었어. 아마 지금쯤 가족들이 영식이 생일 축하하고 있을텐데 맛있는 거 많이 먹어. 잘 지내고 있다고 엄마 꿈에 한번쯤은 들려줬으면 좋겠다.



영식아. 우리 곧 다시 만나자. 그 때까지 우리 건강히 잘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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