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I know my place.

2018. 3. 3. 04:17





1.
‘안분지족,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안다.’


여전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내 분수를 인정하게 되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의 분을 안다는 것이 인생의 지혜일 수 있다. 분을 알면 앞서가는 이와 비교하며 스스로 폄하하거나 질책하지 않고, 남을 시기하지 않으며, 내 갈 길을 내 속도로 걷게 된다. 때때로 열등감에 빠져 버리기도 하지만, 자책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샘을 부리지 않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이는 마음 수련이 꽤나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태도가 남의 눈에는 소극적으로 또는 실패가 두려워 포기부터 하는 모양새로 보일지언정, 분에 넘치는 일은 하지 않고, 올라도 즐겁지 않을 나무는 애써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유리병 안에 벼룩처럼 한계를 긋겠다는 말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은 이상이 없는 안분지족의 삶을 살다보면 여차하다 안주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다는 걸 안다. 늘 이상을 품은 채로, 오르고자 하는 나무를 심을 것이다.


2.
매주 나오는 스케줄을 합산해 이번 주에 나올 급여를 계산해보니, 곧 구해야할 집값은 커녕 다음 달 카드빚을 갚기도 벅차다. 겨우 15일 남은 아이슬란드 여행 경비도 마련 중인데. 늘어날 생각은 없이 잔고가 바닥을 치고 있는 통장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매일 노동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상이 없던 여섯 달을 지내고 보니 이른 새벽의 출근길도 감사하며 다니게 되고, 퇴근하고 돌아와 하루의 첫 끼로 저녁을 차리면서도 오늘 하루 잘 보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올라오기도 한다. 

저녁을 차려 먹고 나서는 제이를 눕혀놓고 돌돌이 테이프로 털을 빗겨가며 정리한 뒤, 제이의 화장실을 치운다. 그리고 바닥을 쓸고 닦는다. 제이의 물을 새로 갈아주면서 가끔 저녁이 되기도 전에 밥을 다 먹은 날이면 평소 주던 사료의 1/5를 더 넣어준다. 그럴 때면 야옹 거리며 다리를 스쳐 지나가는 제이. 온 집안에 흩날리는 고양이 털때문에 유토의 비염은 날로 심해져가는만큼, 제이에 대한 애정도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이제는 정말 친해진 거 같은데 이별의 순간이다. 벌써부터 슬프고 아쉽다.

집안일을 하고 나면 체력은 방전되어 눈에 보이는 해야할 일만 끝마친 채, 정작 마음 먹었던 영어공부나 글쓰기는 뒷전이 된다. 단순히 편안한 마음으로만 사는 것이다. 이토록 안주하는 마음이 지속되면 현재 가능한 일도 분에 넘치는 일이 되어버린다. 내 분은 점점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분수를 지키며 현재에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분을 키워 나가며 현재를 즐길 줄 있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분수를 아는 것부터 시작이 되어야 하고, 구체적인 이상을 그려 그에 따른 실천을 해야 한다. 앞으로 내딛는 걸음들이 나무의 큰 가지가 될테니, 그 전에 든든한 거름부터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하루의 일정 시간을 정해 영어공부와 독서, 글쓰기를 할 예정이다. 계획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이 마음이 꾸준한 노력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아주 오랜만에 다른 이를 향해 샘을 부리던 마음을 되짚어 성찰해본다. 글을 쓰고나니 불룩했던 고약한 심보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별 헤는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리 크리스마스  (0) 2021.12.25
나이 맛있게 먹기  (2) 2021.11.19
I like myself  (0) 2021.11.05
경계  (0) 2020.09.11
Dear.  (0) 201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