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릎을 베고 잠든 찰스



요즘 제일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는 나이 먹으니까, 나이 들어서, 나이 드니까. 이런 말은 뭔가 꼰대 같고, 스스로를 나이로 저평가 하는 기분이 들어서 앞으로는 나이 이야기 다음에 부정적인 말이 뒤따르는 걸 삼가려 한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늘 하시던 '비 오기 전 날에 삭신이 쑤신다'는 말을 어렴풋이 알겠다. 한 번 밤을 새면 며칠간 컨디션이 확 망가진다는 것도 느끼고.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잘 붓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체력 또한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감기가 잘 떨어지지 않아 거의 두 달째 달고 사는 중이다. 이제는 필수불가결이라는 영양제 챙겨 먹기와 운동을 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가. 휴...


어쨌거나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이 많다는 거다. 우선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을 때, 고민하지 않고 노래를 선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기분에 쏙 들어맞는 음악을 쓱 골라 듣는 그 기쁨이란! 물론 10년, 20년 전에도 좋아하는 노래는 많았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는 있었지만 그 때는 순위권에 있는 노래를 위주로 들었다면, 지금은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여러 음악을 접하면서 취향이 생겼다.

나이를 먹으면 취향이 확고해지고 자아가 강해진다는데, 이 때 노력하지 않으면 그저 지금까지의 경험에만 빗대어 판단하게 되는 상태 그대로 굳어져버릴 거 같아 두렵다. 그런데 어쩌면 이전보다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는 시대에 살다보니, 내 윗세대보다는 유연해지는 일이 더 쉬울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지 않고, 현재의 내가 평생의 나일 수 없듯이, 취향은 변하고 사고도 변한다. 몰랐던 음악을 듣고 보면서 귀가 열리는 경험을 겪고나니, 언제 어디서든 새로이 만나게 되는 음악이 기대가 되는 것처럼, 열린 마음으로 지내면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하자. 그럼 좀 더 다양해진 나를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또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은 무던해진다는 점이다. 타고난 기질 자체가 기복이 심하거나 까탈스러운 편은 아니긴 해도, 나이가 들면서 더 무던해지는 거 같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쉬이 넘길 수 없었을 어려움도 이제는 이 또한 언젠가는 흘러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품고,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온 이유가 분명 있을거라는 믿음 아래.

이게 또 회피랑은 다르다. 회피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꼭꼭 덮어놓고 들춰보지도 않는거라면, 이건 그냥 내 마음 하나만 달리 먹는거다. 마음 하나만 바꾸면 사소한 감정싸움부터 도저히 답을 모르던 일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또 흘러가있다. 내가 이상하게 약간 집착하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그릇이다. '내 그릇이 작아서, 또는 저 사람의 그릇이 커서'와 같은.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공한 사람보다는 그릇이 큰 사람. 그래서 마음을 바꾸는 순간, 내 작던 그릇은 깨지고 조금은 더 커진 그릇으로 바뀌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그런데 그렇다고 무던한 게 꼭 좋다는 말이 아닌 게, 본인을 살피는 법을 모르면 정말로 괜찮아서 무던하게 넘어가는 건지, 좋은 게 좋은거라며 무던한 척 넘어가는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토를 만나서 배운 좋은 것 중 하나는 자기 감정에 솔직하기다. 본인이 본인을 속이는 건 제일 용납 못하는 우토. 나는 어려워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첫번째 방법을 우토는 잘하는 편이다.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하고, 슬플 때 마음껏 슬퍼하는 단순한 감정표현도 매우 풍부하다. 가장 가까이에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은거다. 큰 복으로 여긴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나이는 어디로 먹었어?'는 여러 뜻을 담고 있다. 동안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도 하지만, 나이가 그저 숫자에 불과한 사람들에게도 한다. 성찰하지 않는 하루가 모인 일년이, 또 한 해 두 해 모여 그 나이가 됐다는 뜻으로 하는 말일테니. 나는 나이 아주 맛있게 잘 먹을거다. 그래서 나중에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을 잔뜩 써내려 가고 싶다. 열심히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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