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2019. 12. 29. 05:19

크리스마스 이브 날부터 슬금슬금 몸이 안 좋더니, 결국 크리스마스에 크게 앓아누웠다. 아주 어렸을 때 말고는 독감에 걸려본 적이 없어서 이게 독감인지도 모르고 심한 감기겠거니, 하며 일반 감기약을 먹으며 이틀을 버텼다. 증상 중 가장 힘들었던 건 관절통과 근육통이었는데, 나는 이 고통이 전 날 잘못된 자세로 운동한 런지 때문인 줄 알고 얼음 찜질을 하며 지냈다. 3일 연속 쉬는 데이오프를 받아서 굉장히 신나있었고, 많은 계획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내리 잠만 잤던 연휴였다. 

 

금요일날은 오픈 출근이었기에 자는 내내 못 일어날까봐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고, 쉴 틈없이 나오던 기침과 부어 있는 목 때문에 한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마음같아서는 오픈만 해놓고 바로 집에 가버리고 싶었는데, 마감에 출근하는 슈바가 매장에 온지 얼마 안되서 혼자 두고 가기가 마음이 좀 그랬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아무도 내 쉬프트를 커버 못해줘서 하는 수없이 8시간 일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독감 증상이 뭐더라 하는 마음에 구글에 검색해보니 완전 내 증상이었다. 그래서 일반 감기약이 하나도 안 들었구나.

 

점심시간에 입맛도 없고 힘도 없어서 백룸 데스크에 엎드려서 쉬고 있었는데, 퇴근하던 폴라가 써놓은 것.

 

 

그러고는 다른 슈바 몰리에게 내가 이러고 있다고 말했는지 몰리가 집에 가라고 말해줬다. 나는 바로 일어나서 "알유 슈어?"라며 바로 코트를 입고 가방을 메고 매장을 나섰다. 가기 전 샤퍼스에서 플루 약을 샀고, 역에 내려 팀홀튼에 들러서 치킨누들 스프를 하나 샀다. 도저히 무엇을 해먹을 기운은 없고, 약을 먹어야 몸이 나을 거 같아서. 캐나다에서는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약을 처방하기 보다는 오렌지 주스와 치킨누들 스프를 먹으라고 권한다. 약이 몸에 좋을 건 없으니, 잘 챙겨 먹어서 낫는 자연치유를 권하는 듯 하다. 나는 감기에 걸려도 약을 잘 안 먹고, 자연 치유를 행하던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약을 먹으니 한달 내내 지속되던 마른 기침이 일주일도 안되서 없어지는 걸 보고, 무조건 약을 안 먹는 것만이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과학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집에 와서 스프를 반쯤 먹고 약 먹고 4시간을 내리 잤다. 자는동안 식은땀을 흘려 위아래 잠옷이 홀딱 젖었고, 옷을 갈아입고 남은 스프를 먹은 후 약을 먹고 유토가 올 때까지 다시 또 잤다. 유토가 와서 끓여준 비트스프를 먹고 약 먹고 또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유토가 목이 아프다고, 아마도 나한테 옮은 듯하여 아침 먹고 같이 약 먹고 또 같이 잤다. 

 

유토랑 닿케랑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이미 크리스마스는 저 멀리 지나갔고 닿케는 곧 떠날 날이 다가오고 아직 내 몸은 평소로 돌아오지 못했고, 내일은 출근해야하고.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유토를 데리고 매년 플루샷을 맞으러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 크리스마스 이브에 받은 제로의 택배 덕분에 맛있는 단호박죽을 먹었다.